각오만 강요받은 젊은 활동가들이 떠나간다

x. 오마이뉴스의 기사, ‘소통은 없고 ‘각오’만 강요… 젊은 활동가가 떠난다‘ 를 먼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지는 거의 8년은 된 것 같은데… 이제서 기사 하나가 나왔다. 특히나 4대강 때 만났던 20대 활동가들과도 함께 토로했던 것이 운동권 내에서도 ‘존경’이라는 이름의 상명하복 구조가 있기 때문에 앞선 선생님들이 해오던 고전적인 투쟁 방식을 따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다소 격한 현장에서 스크럼을 짜는 식의 고전적인 투쟁 방법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오늘 2014년에 더 매끈한 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는 젊은 활동가들이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은 운동을 지루하고, 힘든 것으로만 몰고가 대중들에게 딱딱하고 지루한 이미지를 각인 시킨다. 동시에 젊은 활동가들을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이후에는 이 젊은 활동가들마저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2006년 쯤, 노무현 시절의 FTA 저지 집회와 反戰 집회들에서 나와 친구들은 아나키스트들과 안티파, 스트릿 아티스트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텐실 기법을 통해 거리 행진에서 여러 창작물을 만들었는데, 경찰은 별 제지하지 않았지만, 도리어 같이 행진하던 시위대에게 제지 당하는 어처구니 일들이 있었다.

 

2007년 反戰 집회의 행진에서는 딱딱한 구호와 운동권 원로분들께서 대오를 이끄는 형태에 답답함을 느꼈던 우리는 대오를 이탈하여 앞쪽에서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대개 시위 대오의 깃발들은 ‘OO 노동조합 XX지부’, ‘민중 민주 QQ 대학, HH’, ‘YY당 JJ도당’ 식이었는데, 당시 Profane Existence 레이블의 펑크운동 구호 “Making punk a threat again!”(펑크증진운동선언문 번역글 링크) 에 영향받은 우리들은 같은 구호와 Ⓐ(Circle A: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심벌)를 그린 소속 불명의 커다란 검은 깃발을 들고, 검은 마스크를 쓰고 행진했다. 당시에 중앙일보같은 보수 일간지가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지금은 찾기가 어렵다. 갖고 있는 친구는 연락을 달라.

 

지금 기억에 남는건, 보통 시위 대오에서 보이는 깃발보다 훨씬 컸다는 것이다. 펼치면 사람 한둘 말아다 멍석말이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 덕분에 집회 장소까지 들고가기는 굉장히 까다로웠다. 왜냐면 깃대가 다른 대오들처럼 접을 수 있는 낚시대 타입이 아니라 정말로 5m가 약간 넘는 대나무 죽창이었다. 그리고 대추리 갔다오는 길에 치해서 잃어버림ㅠ 이렇게 큰걸 어떻게 잃어버릴 수 있냐고 자책하기도 했다ㅠ (대추리 관련기사, 또는 흑역사)

 

한번은 나와 친구들은 99년 시애틀, WTO 반대 시위를 기점으로 결성되어 활동한 아나키스트 마칭밴드, ‘Infernal Noise Brigade‘와 베를린에서 있었던 세계화 반대 시위에서 경찰 폭력이 시위대에 가해지지 않도록 대오 맨앞 트레일러 트럭에서 공연한 ‘Atari Teenage Riot‘에 착안해 시위 현장에서 격렬한 펑크, 하드코어 공연과 레이브, 테크노 디스코 등으로 바꿔보려고 했으나 운동권의 끝없는 무관심과 ‘신성한 운동을 놀이 따위로 생각하지말라’는 식의 냉대로 무산되었다.
더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기도 하고, 여러 혁명 동지들의 흑역사와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시간들이 공개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개된 글로는 이런 정도만 이야기 하겠다. 추후에 사람들이 원한다면 우리들의 실패를 바탕으로 다시 조직 가능하도록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때가 있을테니까.

 

아무튼 다소 아쉬운 내용이긴 하지만, 이 기사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에서의 시민운동은 이제는 더이상 자생적이라기보다 경직된 형식적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동시에 공허한 구호들이 우리 주위를 떠돈다. 좀더 유연하고 적극적인, 그리고 엠마 골드만이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내 혁명이 아니다”라 말했던 것처럼, 사유와 향유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와 사회운동이 변화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짧아지게 되는 때를 맞이한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쉬이 지난 날들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타성에 젖어 과거의 시간 속에 묻혀 내일을 잊고 오늘을 아파한다.
하지만 세월을 지고서도 더욱 왕성한 사람들도 있다. 지나간 날들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면서도 어제를 사유하고, 오늘을 향유하며, 내일을 만들어간다.

 

이 파국과 비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 Atari Teenage Riot의 99년 베를린 노동절, WTO 반대 시위/공연: 유튜브 바로가기
Infernal Noise Brigade의 99년 시애틀, WTO 반대 시위: 유튜브 바로가기
대추리 관련 흑역사: 민중의 소리 바로가기
프로팬 엑시스턴스 레이블의 펑크증진운동선언문: dx3 번역 바로가기

 

++ FTA 저지 시위에서 같이 행진하던 시위대가 우릴 막아서던 것 매우 답답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2010년 쥐벽서에 대한 사람들 반응이 의아했다. 생각해보니 결국 한국에서의 운동은 우파 뿐만 아니라 좌파들도 프레임 논리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가 한국으로 수입되 방영되기 전에는 한겨례, 경향이 왜 트윈 픽스 같은 예술 작품을 방영하지 않냐며 프로그램 편성을 비판했었다.

이후 KBS2 채널에 의해 트윈 픽스가 방영되자 한겨례, 경향 신문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간통, 친족살해, 근친상간 등을 소재로한 트윈 픽스는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비판을 했었다.

반면 매일 경제와 동아일보 등의 보수 언론만이 드디어 미국의 젊은 영화 감독 데이빗 린치의 화제작 트윈 픽스가 방영된다며 기사를 써내렸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좌파조차 프레임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우파더러 색안경끼고 좌파를 속단하지 말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