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곳으로 가라

“병1신들 대유행”

베를리너 짜이퉁의 어떤 기사, 독일에도 병1신들 대유행인가. 내가 느낀 바로 여기서 말하는 베를린의 위험한 지역들은 안 위험하다. 물론 내가 경험하지 못한 2006년의 베를린이란 것을 감안하고 읽어야할 내용이더라도, 저 곳들을 ‘위험하다’ 로 치부하는 것은 “주말의 홍대, 신촌에 취객이 많아 위험하므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라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심지어 저 곳들 중 어떤 곳은 오히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까지한데 이런 식의 기사를 쓰다니. 말 통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위험하니 가지말라 했던 곳들 중에서 두 곳 빼고 다 가봤는데, 모두 위험하지 않았다. 그 두 곳은 네오나치 네트워크가 탄탄한 곳이라는데 그나마 이 두 곳도 네오나치 반대 시위에 참여를 통해 직접 가볼 생각이다. 네오나치들이 모여 사는 그 두 곳들을 일단 제외한다면, 그 어떤 곳보다 내가 더 위험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필요한 말:
“Geh gefährliche Orte. Da sind die sichersten Orte.
위험한 곳으로 가라. 그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어제 Thomas와 Oranienburger Tor부터 시작해서 Hackesher Markt, Rosenthalerplatz, Mauerpark를 찍고 Weinmeisterstraße까지 하루종일 걸었다. 아, 잠시 Rosenthalerplatz 쪽의 Weinbergwegpark에 머물렀을 때, 잔디 밭 위에서 비누방울 놀이를 하며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는 새 작품을 구상했다. ‘커다란 비누방울이 천천히 기계에 의해 공중에 띄여지고,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큰 칼이 그 비누방울을 내려쳐 펑! 하고 터져버리는 것’ 을 말이다. 아마 당신의 꿈도, 인류의 희망도 저런 비누방울 같은 것이겠지.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큰 칼이 고장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또 하나, 나와 토마스 이렇게 둘이서 베를린을 활보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쉬이 웃는다.
그것이 조롱인지, 호기심인지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룬다.
하지만 독일에서 백인과 흑인, 백인과 동양인의 조합은 흔하더라도
흑인과 동양인의 조합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피하고 있다.
그 것으로 우리가 잃을 것은 자유와 미래,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안전한 죽음뿐이다.

 

 

 

ㅡ 2012년 6월 29일, 오후 세시 반.

The Pogues – The Wild Rover with korean translate

 

I’ve been a wild rover for many’s a year,
나는 긴 세월동안 거친 방랑자였고,
And I’ve spent all my money on whiskey and beer
위스키와 맥주를 사는데 내 모든 돈을 탕진했지
And now I’m returning with gold in great store,
지금은 전당포에 금붙이를 털어넣고 있어
And I never will play the wild rover no more
다신 이따위로 방랑하며 살지 않을거라네

And it’s no, nay, never!
안된다네, 절대로!
No nay never no more
안돼, 절대로 더이상은
And I’ll play the wild rover,
나는 더이상 거친 방랑자로,
No never no more
살아가지 않을거라네

I went to an alehouse I used to frequent,
에일 맥주집에 갔지, 완전 단골이었고,
And I told the landlady my money was spent
여주인에게 내 맥주 마시느라 빈털털이라고 말했어
I asked her for credit, she answered me, “Nay”,
그녀에게 외상 되냐 물으니, 그녀는 “절대 안된다”며,
Saying, “Custom like yours I can have any day”
“너 같은 손님은 차고 넘친다” 말하더라

And it’s no, nay, never!
안된다네, 절대로!
No nay never no more
안돼, 절대로 더이상은
And I’ll play the wild rover,
나는 더이상 거친 방랑자로,
No never no more
살아가지 않을거라네

I took from my pocket ten sovereigns bright,
주머니에서 빛나는 금화 몇개 꺼내니,
And the landlady’s eyes opened wide with delight
여주인은 기뻐하며 눈을 크게 뜨고선
She said, “I have whiskeys and wines of the best,
“우리 가게엔 최고의 위스키와 와인이 있고,
And the words that I told you were only in jest”
내가 당신에게 한 말은 농담이었을 뿐이에요” 라고 말하더군

And it’s no, nay, never!
안된다네, 절대로!
No nay never no more
안돼, 절대로 더이상은
And I’ll play the wild rover,
나는 더이상 거친 방랑자로,
No never no more
살아가지 않을거라네

I’ll go home to my parents, confess what I’ve done,
내 무슨 짓을 했는지 고백하러 부모님 집에 갈거야
And I’ll ask them to pardon their prodigal son
그리고 방탕한 아들을 용서해주사 여쭈어야겠지
And when they have kissed me as oft-times before,
부모님이 종종 전에 키스해주실 때처럼,
I never will play the wild rover no more
다신 이따위로 방랑하며 살지 않을거라네

And it’s no, nay, never!
안된다네, 절대로!
No nay never no more
안돼, 절대로 더이상은
And I’ll play the wild rover,
나는 더이상 거친 방랑자로,
No never no more
살아가지 않을거라네

 

 

The Pogues – Love You ‘Till The End with korean translate

https://www.youtube.com/watch?v=4QCPOGptn0U

 

I just want to see you
난 단지 널 보고 싶어
When you’re all alone
내가 혼자일 때면
I just want to catch you if I can
널 잡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I just want to be there
나도 거기 있고 싶어
When the morning light explodes
아침 태양이 뜨겁게 타오를 때면
On your face it radiates
네 얼굴에 그 빛을 발산하고 싶어
I can’t escape
난 벗어날 수 없어
I love you ’till the end
널 영원토록 사랑해

 

I just want to tell you nothing
네게 아무 것도 아니라 말하고 싶어
You don’t want to hear
넌 듣고 싶지 않겠지
All I want is for you to say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네게 말하는 것뿐이야
Why don’t you just take me
왜 나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니
Where I’ve never been before
내가 한번도 본적 없는 그런 세상이 될텐데
I know you want to hear me
난 네가 내게서 듣고 싶은 말을 알아
Catch my breath
내 숨결을 느껴줘
I love you ’till the end
널 영원토록 사랑해

 

I just want to be there
난 그냥 거기 있고 싶을 뿐야
When we’re caught in the rain
우리가 함께 비 맞던 때
I just want to see you laugh not cry
난 네가 울지 않고 웃었으면 좋겠어
I just want to feel you
난 널 느끼고 싶어
When the night puts on its cloak
같이 외투를 둘러싸던 그 날 밤처럼
I’m lost for words don’t tell me
내가 어떤 말을 잃었는지 말하지 말아줘
All I can say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전부
I love you ’till the end
널 영원토록 사랑한다는 말뿐이야

The Pogues – I’m a Man You Don’t Meet Every Day with korean translate

원 곡은 아일랜드의 유명한 발라드 곡인데, 포그스가 약간 개사해 불렀습니다.
옆으로 살짝 뺀 부분이 포그스 버젼에서 빠진 원곡 가사입니다.
하단에 원곡에 가까운 버젼 유튜브를 따로 링크했습니다.

 

Oh my name is Jock Stewart
오.. 내 이름은 조크 스튜어트
I’m a canny gun man
나는 꽤나 영리한 사람이지
And a roving young fellow I’ve been
떠돌이 젊은 친구 하날 봤어

 

So be easy and free
간단히 자유로워져
when you’re drinking with me
네가 나랑 마실 때 말이지
I’m a man you don’t meet every day
그러ㅏㄴ 나는 네가 매일 만나주지 않는 사내야

 

I have acres of land
나는 천이백평짜리 땅을 갖고 있는데
I have men at command
내 말대로 하는 사내들도 있지
I have always a shilling to spare
항상 몇푼 더 아낄 수 있었어

 

So be easy and free
간단히 자유로울 수 있지
when you’re drinking with me
네가 나와 마실 때면 말이야
I’m a man you don’t meet every day
하지만 나는 네가 만나주지 않는 그런 사내야

 

So come fill up your glasses
그러니 네 잔들을
of brandy and wine
브랜디나 와인 따위로 채워
Whatever it costs I will pay
그게 얼마던 내가 낼게

 

So be easy and free
간단히 자유로워지게
when you’re drinking with me
네가 나와 마실 때면 말이지
I’m a man you don’t meet every day
하지만 네가 만나주지 않는 나는 그런 사나이

 

I’m a piper by trade
나는 파이프 부는 사내
And a roving young blade
그리고 떠도는 젊음
And many a tune I do play
많은 멜로디를 연주했지

Let us catch well the hours
괜찮은 시간을 만들어보자
And the minutes that fly
잠시라도 날아보자
And we’ll share them together this day
우리 같이 이 날들을 보내보자

 

Well I took out my dog
그래, 내가 기르는 강아지 녀석과
and him I did shoot
그를 내가 쏴 버렸지
All down in the county Kildare
킬데어 동네가 푹 가라 앉았어

 

So be easy and free
그냥 자유로워져
when you’re drinking with me
내가 너와 마실 때는 말이지
I’m a man you don’t meet every day
그러나 나는 네가 만나주지 않는 그런 사내

 

 

나의 태도

x. 나의 태도

종종 나의 직선적인 태도가 공격적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또 어떤 사람들이 나를 둘러싼 루머를 만들어 내는지 조차 대략 알고 있다. 나는 대화를 통해, 또 작업을 통해 서로의 불편한 것들과 갈등을 드러내려고 한다. 갈등을 숨기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 분명하게 잘라 이야기 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한 사실과 달리 종종 비난을 받왔다. 그래서 그 비난들을 즐기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는 나를 오해할 권리가 있지만, 나에게는 그들에게 항변할 의무가 없다.

나는 2011년 작업 <Meltdown> 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는 것 뿐이다. 때때로 도망을 권유하면 사람들을 소통을 요구하며 나를 두고 고립된 사람이라 말한다.” 라고 이야기 하였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하는지부터 돌이켜 보았으면 한다. 타인에게는 물론 본인 스스로에게까지 어떤 억압을 가하는지. 나는 이 사람들에게서 대한민국 군대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내면화를 간접 경험한다.

SNS: 좌절감, 분노, 그리고 미소

x. SNS: 좌절감, 분노, 그리고 미소

sns가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건과 사고가 단 반시간 만에 널리 퍼지는 시대가 열렸다. 때문에 부조리에 대해 대중들이 성토하여 바로 잡기도 하고 있다. 반면, 대중들은 작은 일에도 심판하려고 처벌하려 드는 경향이 생겼다. 공인(공법인)이 아닌 일반인(자연인)의 신상을 턴다든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도 어렵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범죄를 저지른 기업가들과 공직자들의 권력 앞에서는 볼멘 야유만을 내고 있다. 그런 좌절감 때문인지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 이슈라던가 일반인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영상이나 글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것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

좌절감, 분노, 그리고 미소.

‘나의 좌절감이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되지 말아야하며, 누군가의 좌절감이 나의 미소가 되지 않아야 한다.’ 라 답하고 싶다.

고려대 총학의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거부와 투명가방끈

x. 고려대 총학의 언론사 대학순위평가 거부와 투명가방끈

나는 고등교육 필요성의 가장 주요한 근거로서 ‘사회적 분업’ 을 통해 사회적 피로와 갈등, 비용을 줄임과 동시에 발전을 목표로한 ‘공공의 것’ 이라 생각한다.

고등교육에서 사회적 분업의 개념이 빠지면, 특정 계층의 독점이라는 개념이 남는데, 독점이라는 개념만이 남게 되면 결국 고등교육은 부의 축적과 동시에 대학 서열화 문제와 같은 경쟁체제를 낳게 된다. 결국 사회적 피로와 갈등, 비용이 줄어들기는 커녕 그러한 부조리들이 늘어난다. 또한 교육의 공공성이 떨어지게 될 수록, 지금의 한국처럼 자연스레 기업식 대학재단이 들어서며 공공의 것이 아니라 사적영리를 위한 것으로 남게 된다.

독일의 대학:
– 100퍼센트 민간소유의 사립대학이 단 하나도 없음.
– 사립대학 비율 3퍼센트.
– 2009년 독일에서는 등록금(입학등록비및 학생회비)을 50만원 수준에서 80만원 수준으로 올리는 것에 항의하는 25만 독일 대학생이 참가한 대규모 저항이 있었음.
– 학생파업, 철야농성, 가두행진, 대학 점거, 철도점거, 법원과 의회점거, 바리케이트, 화염병, 투석전이 연달아 이어졌고, 그 때 나온 구호중 하나가 “교육은 서비스가 아니다” 였다.
– 결과: 정치인들이 새 선거공약으로 등록금 폐지를 내세우고, 이후 등록금 제도 폐지. 외국인 학생도 등록금 없음.
–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교육부 장관, 테레지아 바우어: “빈부와 상관없이 공부할 기회를 균등하게 주어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해야 국가가 번성한다. 이를 막는 모든 장애물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라고 발언.
(참고: 지난 칼럼 ‘학벌주의에 대한 단상’)

사실 ‘대학’ 이라는 제도 자체가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생겨난 것이도 하다. 독일도 과거 25퍼센트였던 대학진학율이 현재 35퍼센트까지 늘었는데, 이는 유로금융위기와 더불어 사회적 불평등에 가속화됨에 따라 대학생 신분의 세금, 복지 혜택을 누리고자 졸업하지 않는 학생과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례들을 참조한다면 더욱 분명히 드러나겠지만, 나는 대학진학율이 높아지는 것이 그 사회의 불평등과 계급간 격차가 그만큼 커진 것이라고 본다.

한국이 서열화라는 그 한계를 극복하려면, 대학 자체를 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 대졸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별을 줄여야만 한다. 안타까운 현실은 한국 좌파들 사이에서도 아니, 진보정당과 운동권 사이에서도 ‘-사’ 짜 타령하는 사람들이 한 둘 아니고, 그렇게 앞, 뒤 줄을 세운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쾌한 경험은 열에 아홉은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인사 5분 만에 학교와 전공 질문 받는 것들이다. 왜 한국에서 대학물을 먹은 식자들은 이러한 무례한 행동을 일상으로 삼은 것일까. 그게 한국의 교육의 부조리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악!’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 매번 든다. 심지어 독일에서 대학 평준화 혜택 받고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조차 서열 나누기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MC 몽과 병역제도

x. MC 몽과 병역제도

법대로 엠씨몽 군대 못 가는게 맞다. 발치가 의도였건 아니건, 이 상태의 치아로는 병역법에 근거해 군대 못간다. 억울하고 분통하면 너도 어금니 쪽 치아 11개를 발치하고, 남은 인생을 온전히 씹지 못하고 살아가면 된다.

연예인은 ‘공인’ 이 아니다. 공직자들이 공인(공법인)이다. 이런 이들의 부정부패와 비리에는 볼멘소리를 내던 대중들이 일개 개인인 연예인에게 이런 폭발적인 반응을 퍼붓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MC 몽의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병영 내에서 연달아 일어난 사건과 사고, 조직적 범죄들을 향해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군에 보내나”, “병역법이 무너졌다” 라고 이야기 했다. 우리 모두 지금의 병영문화와 징병제도, 군내 범죄들의 분노하고 위험성을 느끼면서도 MC 몽은 다른 문제다?

군대 가는 놈들이 호구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것은 MC 몽이 아니라 얼마 전 병역제도의 희생양이 되어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윤일병이다.

때문에 MC 몽을 까는 것보다 정치인을 쪼고, 압박해 망가진 병역법을 개선하는 것이 오로지 유효한 답일 것이다. 그의 잘못이야 알겠지만, 그럴 더 대차게 까서 밥줄을 끊어놓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에게만 분노를 쏟아 붓는 것만으로는 잘못된 관행과 병역법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그 증거가 유승준 이후로 바뀌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는 병역 부조리와 비리이며, 군내에서 의문사 당한 희생자이고, 되려 성희롱 따위의 모욕을 받는 유족들이다. 결국 한국의 병역제도는 15년 전이랑 조금도 다른 없는 같은 자리에 있다.

10월 24일, 오스트리아의 빈의 영웅광장에서 ‘나치 독일의 군인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싸우기를 거부해 탈영했다 붙잡혀 처형된 군인을 기리는 기념비’ 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하인츠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제막식에서 “히틀러의 군대는 우리의 군대가 아니었다”면서 이들의 희생과 용기를 기렸다. 이 발언이 있던 영웅광장은 1938년 당시 약 25만명의 오스트리아인이 모여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던 장소였다. 히틀러 치하에서 수 십만의 오스트리아 젊은이들이 참전했으며, 2009년에서야 당시의 전투 거부가 무죄라고 받아들여졌다. 발터 모노세크 빈 대학교 역사교수에 의하면 “아주 최근까지도 이들 탈영병은 배신자 또는 동지들의 살인범으로 많은 사람이 여겼다” 고 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한국의 징병제를 노동착취의 관점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한국의 병역제도는 징병과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를 비롯하여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군인 월급, 폭력적인 병영문화, 군내 조직적 범죄, 비리 그리고 부정부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문제 뒤로 밀쳐두고서는 한국에서 영국처럼 왕자가 파병에 자원하는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다른 MC 몽이 나타날 것이고, 또다른 윤일병, 또다른 임병장이 나타날 것이다.

곽정은, 섹드립 혹은 성희롱

x. 곽정은, 섹드립 혹은 성희롱

상당히 의미 없는 논쟁. ‘여성의 섹드립은 위협이 되지 않을만큼 여성의 지위는 “위협적이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상태다.’ 라는 주장도 보았지만, 빈약한 변명일 뿐이다. ‘내가 8000km 정도 떨어진 한국 여성에게 어떠한 섹드립을 치더라도 실질적 위협이 될 가능성이 없기에 하등 문제 없다’ 라는 것도 통약될 수 있단 말인가? 판단은 읽는 이에게 맡기겠다.

곽정은의 발언이 섹드립이냐 성적 희롱이냐, 혹은 ‘장기하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다’ 와 관계없이 곽정은의 발언은 촌스러운 농담이었다는 이야기 아닐까. 섹드립이란 단어로 통용되는 무언가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지만, 묘한 섹스미가 있어야 하는데, 곽정은의 발언은 아저씨가 하는 짖굳은 농담 같이 들린다. 이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희롱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별개로 이 사람들이 그 아저씨들의 곽정은과 이번 발언과 같은 것을 이와 같이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그러한 지점에서 곽정은의 이번 발언은 ‘연애 칼럼니스트’ 로서의 곽정은이 생각보다 쿨하지 않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누군가는 곽정은의 이번 발언을 두고 도발적인 섹드립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대본에 쓰인 대로 읽었다’ 라고 가정하더라도 곽정은은 섹시즘이나 페미니즘에 크게 무게를 두고 있는 ‘연애 칼럼니스트’ 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녀사냥에서 미디어에 노출된 곽정은은 그저 자유주의 커리어 여성의 연애 관점을 갖고 있을뿐, 독립적인 여성의 연애 관점이 없었다. 더욱이 금기도 아닌 일상적인 것들이 판도라 상자 안의 것들처럼 포장되었기 때문에 나는 흥미를 잃었다.

내가 이 발언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이 촌스러운 섹드립에 벙찐 표정으로 화답했을 것이다.

결론: 이번 논쟁보면 사람들이 성관념에 대해서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 되었있다는 것이다. 섹드립 치고 싶어도 성희롱을 신경쓰느라 유머감각이 없는 나무토막이 되거나, 섹드립과 성희롱 사이를 착각하고 반시간 만에 개새끼로 낙인 찍히거나.
섹시즘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여성을 보호받을 존재로만 규정하는 ‘고전적 페미니즘’ 만이 강요된 사회가 사람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