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ert Review: Life

x. 토요일, Life.
물론 베를린 로컬씬의 터줏대감 Pig//Control 과 베를린 로컬 2인조 하드코어-펑크 Mülltüte, 처음 보는 Absurd S.S., 그리고 함부르크에서 날아온 하드코어 Argh Fuck Kill 도 볼 수 있었다.
10시에 칼시작한다고 했지만, 나는 전 날의 세련된 숙취를 즐기며, 11시까지 방구석에 있다가 슬슬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해보니 11시 15분인데 시작도 안함. 역시 펑크타임은.. 범지구적 현상인 것이다. 누가 나보고 시간 약속 안 지킨다고 막 까면서 시간 약속 지키라 잔소리 대따했는데, 그 친구는 펑크타임과 같은 범지구적 현상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지 “일찍 나온 놈이 병1신!”

 

이 날 존나 빡친게 두가지 있었는데, 그 하나가 바로 이거. 왜 Life 의 공연을 AGH 가 아닌, Koma F 에서 했냐는거다. Koma f 작다. 존나 더럽게 작다. 50명 들어가면 못 움직인다. 근데 내가 보기론 어제 최소 150명은 왔다. AGH 에서 했더라도 150명이 오면 간신히 수용할텐데, 대체 얘네는 뭐가 문제라서 AGH 를 개방하지 않은 것일까. 페이스북 이벤트 페이지는 당연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참석이 고작 50명이라고 되어있었지만, 살아있는 일본 크러스트의 전설 Life 가 베를린에서 공연 한다고 하면 당연히 포츠담은 물론이고 함부르크 같은 도시에서도 올텐데 말이다. 쾨피 내부의 일은 더이상 이야기할 수 없지만, 진짜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큰 문제였는지는 Life 공연할 때 터지고 만다.

 

이전에 다른 밴드들이 할 때도 공연장이 가득찼고, 답답함을 느끼는 애들은 밖에서 불 쬐고 있었다. 나는 스테이지 앞 쪽에서 Life 의 투어를 돕기 위해 Augsbrug 에서 온 아스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공연 시작하니까 밀려들어오는 관객에 아예 움직일 수 없었고, 더이상 들어올 자리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밀고 들어오려 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관객을 탓하랴. 아무튼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술렁이고 있었다. 따닥따닥 붙어 움직일 수조차 없는데 Life 의 음악은 사람들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고, 나와 몇 남자애들이 돌아가며, 스테이지 앞을 막으면서 놀아야 했다. 몸으로 버티기야 하는데, 결국 일이 터진게 중간에 케이블로 고정시켜놓은 스피커들이 Life 의 기타 멤버 쪽으로 무너졌다. 다른 멤버들은 공연을 중단시키지 않고 계속 했는데, 일단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나와 몇 친구들이 스피커를 다시 올리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갔지만, 케이블이 잔뜩 엉켜있는데다 스피커의 무게도 상당해 쉽지 않았다. 다행히 곧 공연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럴수도 있다고 해맑게 웃는 Life 의 멤버들을 보니 공연 기획한 친구에게 더 짜증이 났다.

 

또 달리 빡쳤던 일, 어떤 미친놈 하나가 과격한 모싱을 하는거다. 여긴 펑크 공연장이고, 크러스트 공연장이다. 과격한 모싱은 허용되지 않는다. 여러 친구들이 그 놈에게 자제할걸 이야기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Koma f 에서 벌어질 수 있냐는 사실이다. 결국 다른 한 친구가 그 놈을 쓰러트려 물리적으로 제압했다. 사람들은 싸움이 난 줄 알고 말리려 했지만, 펑크들은 쾨피에서 주먹질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이 우리들의 자율주의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놈을 밖으로 끌어내고 여럿이 달라붙어 진정시켜 돌려 보냈다.

 

공연이 끝난 이후에는 Life 와 아스카와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에 Scumraid 와 같이 소중히 지켜주고 싶은 밴드가 있는데, 투어 어떠냐 물었다. 게다가 좀 유치할지 몰라도 내가 일부러 신경써서 Scumraid 티셔츠 입고 갔었다! 근데 Scumraid 티셔츠가 어두운데서는 잘 안보여서 말해주기 전엔 아무도 못 알아봄.. (시무룩..) 아무튼 System Fucker 도 한국 투어 하지 않았냐며, 관심을 드러내보였다.

 

일단 공연이 끝났으니 한잔 할겸 그런 이야기는 후일로 미루고 맥주 한잔하자며, 연락처만 받았다. 사실 유럽 펑크/하드코어나 아나키스트 씬에 아시안이 워낙 없다보니 신기해서 아스카와 이야기 하다 연락처를 받아두었는데, 아스카가 고맙게도 아일랜드의 Easpa Measa 와 본인의 밴드 Nemetona 스플릿 7인치를 주었다.. (독일 아나코 펑크 Nemetona 아니고, 일본 크러스트 Nemetona)

 

같이 이야기 하며 마시다보니 나도 너무 치했고, Life 는 바로 다음날 덴마크 공연이 있어 갔다가 다시 라이프찌히 공연을 하러 온다고 하길래 금방 일어나야지 생각을 했다. 게다가 운전해서 간다길래, 크.. 코펜하겐까지만 최소 7~ 8시간은 운전해야 가는데 걱정이 되었다. 코펜하겐서 라이프찌히까지 또 10시간… 작년 2월 베를린서 예테보리까지 17시간 버스 탔던게 기억났다.

 

어제 존나 웃겼던 일, Life 가 공연하기 전에 독일애들 몇몇이 날 힐끔 힐끔 쳐다보더니 “혹시 Life 멤버?” 하고 물어봄. “미친놈아! 아니라고! 나도 그냥 Life 좋아서 온거라고!” 라고 대답해주고 싶었으나 “아님, 아님. 나 베를린 산지 3년 됐음.” 이라며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해주었다. 왜냐면,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는 베를린 씬의 아시안인 날 모르는거보니 다른 도시에서 온 애들 같은 생각이 들어서.. (’12 OEF 때, Yuying 이가 Wormrot 으로 오해받고 사진 찍히던게 기억났다)

 

그리고 Life 의 공연이 끝나고 내 일본어가 짧아 생각나는 말이 단 하나 밖에 없어 “아리가토” 라며 악수를 청했었다. 그러자 멤버들이 날 일본인으로 생각했는지 일본어로 몇마디 대답을 받았다. 알아듣는 척 해볼까 했다. 그런데 되돌려줄 말이 없었다. 잠깐 벙쪄 ‘뭐… 뭐라고 해야하지?’ 생각하다 “미안, 나 한국사람.. 아는 일본어가 ‘아리가토’ 밖에 없음ㅠ” 이라 대답하자 다들 끌어안고 진탕 웃었다.
결론: Life, 크.. 형님들 사랑합니다!

 

펑크 공연들은 다른 음악과 다르다. 단지 내게만 그럴지 모르지만, 펑크 공연에 있을 때는 많은 영감들을 얻을 수 있다. 특히나 어제 라이프 공연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을 얻어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 특히나 전자 음악과 함께할 내 새 작업도 펑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펑크를 단지 한낱 흥미거리로 보는 먹물들이나 힙스터들이 이래서 불쾌한 것이다. 차별을 반대한다는 이 사람들은 여전히 본인의 관념 속에서만 대상을 활자화 시키며, 마음을 열고, 눈을 뜨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 속에서 우리는 함께 공존할 수 없으며 첨예하게 대립한다. 파괴는 승리하면서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