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order – joleen (dolly parton cover) with korean translate

 

Jolene, Jolene, Jolene, Jolene
조린, 조린, 조린, 조린
I’m begging of you please don’t take my man
제발 내 님을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이렇게 빌게요

 

Jolene, Jolene, Jolene, Jolene
조린, 조린, 조린, 조린
Please don’t take him just because you can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더라도 제발 그를 데려가지 마세요

 

Your beauty is beyond compare
당신의 아름다움을
With flaming locks of auburn hair
적갈색 머리칼의 불타는 바위와
With ivory skin and eyes of emerald green
아이보리 피부와 에메랄드같은 눈망울에 비견할 수 있을거에요

 

Your smile is like a breath of spring
당신의 미소는 마치 봄의 숨결 같고,
Your voice is soft like summer rain
당신의 목소리는 마치 여름 비와 같이 부드러워요
And I cannot compete with you, Jolene
조린, 나는 당신에 비할 바 못되죠

 

He talks about you in his sleep
내 님이 잠들 때 당신에 대해 말했어요
There’s nothing I can do to keep
내가 그를 내 곁에 둘 방법이 있을까요
From crying when he calls your name, Jolene
그가 당신의 이름 조린을 부를 때면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데

 

And I can easily understand
그리고 난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How you could easily take my man
당신이 어떻게 내 님의 마음을 쉽게 얻었는지
But you don’t know what he means to me, Jolene
하지만 조린, 당신은 그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요

 

Jolene, Jolene
조린, 조린
Jolene, Jolene
조린, 조린
I’m begging of you please don’t take my man
제발 내 님을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이렇게 빌게요

 

Jolene, Jolene, Jolene, Jolene
조린, 조린, 조린, 조린
Please don’t take him just because you can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더라도 제발 그를 데려가지 마세요

 

You could have your choice of men
당신은 많은 사람들을 선택하고 가질 수 있겠죠
But I could never love again
하지만 나는 다신 이런 사랑을 할 수 없어요
He’s the only one for me, Jolene
그가 날 위한 단지 하나에요, 조린

 

I had to have this talk with you
당신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야만 했어요
My happiness depends on you
내 행복은 당신에게 달렸다고
And whatever you decide to do, Jolene
그 모든건 조린 당신이 어떻게 하나에 달렸죠

 

Jolene, Jolene, Jolene, Jolene
조린, 조린, 조린, 조린
I’m begging of you please don’t take my man
제발 내 님을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이렇게 빌게요

 

Jolene, Jolene, Jolene, Jolene
조린, 조린, 조린, 조린
Please don’t take him even though you can
당신이 그럴 수 있더라도 제발 그러지 마세요
Jolene, Jolene, Jolene
조린, 조린, 조린

 

https://www.youtube.com/watch?v=qGEubdH8m0s

정어리 – 28

x. 지나간 메모를 뒤져보니 2009년 8월 6일 ㅡ 사유: 희귀성·난치성 질환자, 질병코드 F20.0, Paranoid schizophrenia 로 산정특례가 등록되었다는 것을 찾았다. 더욱이 담당주치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나를 최소 2등급 장애로 지정하여 한달 48만원정도 되는 장애수당을 받게 하려 했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게을렀다.
y. I found a memo from 6, August, 2009 ㅡ Cause: Rare and incurable disease, Disease code, F20.0 – Paranoid schizophrenia by National Health Insurance Service register me on NHIS calculate exemption patient list. Even my attending doctor tried to register on B grade disabled person list by NHIS, but I was so lazy to make some paper then take at least 300euro per month from government.

 

x. 편집증적 정신분열이라는 판정을 받고 폐쇄병동에 입퇴원 반복 끝에 현재까지 약을 처방 받다 지난 금요일 새벽에는 20세의 조증환자로부터 소주병 네병을 연달아 머리에 가격 당하고 쓰러져 수 차례 허리를 걷어 차이고 이미 두차례 부러졌던 왼발 발목과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밟힌 뒤 그 자식을 붙잡아 넓은 대지를 달리는 장군과 같은 기백으로 일어서 경찰관 두명에게 인계하고 경찰서에 그 자식과 함께 형사 앞에서 조서를 작성하던 때, 합의 해달라는 그 자식 말에 “너 님 진짜 고소영”을 외치고 집에 돌아와 어두운 방구석을 지키는 나를 아끼어주는 친구 인터넷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뒤 며칠 술잔을 핥다 생각해보니 도저히 안되겠어 이번 주는 술잔을 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켜나가는 도중 불현듯 생각난 처방전에는 본인이 복용하는 정신과 약들중 리스페달, 아빌리파이에 대한 부작용을 대처하기 위해 먹는 간질과 괴저 등에 처방되는 약을 두가지 모두 햇빛이 해로우니 썬크림을 주간 시간 외출시 항시 챙기고 햇빛에 노출을 삼가라는 주의사항을 일러주지 않은 담당 주치의 신상은 이 못된 년!

 

ㅡ 2010 5월 10일 새벽 찬공기와

못 박기

벽에 못을 박으려면 왼손이 못을 잡고, 오른손이 망치질을 해야하는데, 한국에선 왼손이 못을 잡으면, 정치적 논란에 휩쌓이고, 오른손이 “빨갱이!” 를 외치며 왼손을 망치로 내려친다. 왼손이 오른손에게 “여기 못 밖기로 한거 맞지?” 라고 물으면 왼손에게 관계 장애라도 있다는 듯이 오른손은 왼손을 미친놈 취급한다. 대체로 오른손들이 제일 멀쩡한 척하고, 왼손들을 못도 모르는 그러한 놈이라 치부한다. 오른손들은 대체로 그러하다! 대체로!

 

ㅡ 2014년 4월 3일

일베 9.6 대첩을 보면서

x. It’s fucking disgusting. Yesterday, finally appeared korean extremely right youth ‘ILBE’ out on gwanghwamun square. Their political spectrum is very similar with german neo-nazi and japanese 在特會(在留特別許可, Zai toku: ). Even more, 在特會 wave nazi flag on their demonstration (follow this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MMpGdOVzNzA&feature=youtu.be&a). Also korean leftists are bunch of shit. Easily they just blame to ILBE, but that reaction is what ILBE want from korean society. When you just ignore them, buried disaster marching to here again. Can you hear that fascist’s boot resounds in the street?

x. 두가지 의미에서 정말 역겨운 일이 결국 발생했다.
첫째는 일베가 가상에서 현실로, 그리고 정치세력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는 단순히 일베만이 민주주의를 저해한다고 하는건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것이고, 타인에게 잘못을 미뤄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뿐이다. 일베의 등장 이면에는 사회 구조가 저들을 등장 시켰다는 것이고, 한국의 좌파들도 거기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부패함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다른 진보정당들을 보면 그 내부가 주먹으로 꽉 움켜진 것처럼 교조적이다. 나는 이들이 열려있는 태도를 갖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이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조차 서열주의라던가 계급주의같이 자본주의에 동조하고, 다름을 배척하며, 민족주의에 동조하는 세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비난에도 이들은 스스로 ‘9.6 대첩’이란 단어를 쓸 정도로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이 상황에 일베가 저열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지금에서야 일본 재특회 이야기 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는 신호고, 한국과 같이 문화의 전이가 빠른 사회에서 이번 대란의 상징성은 언제든지 독일의 네오나치들처럼 정치제도로 들어가 NPD 같은 극우 정당을 만들어 합법적인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독일은 차별금지법이 있고, 학술적이지 않은 용도에서 스와티스카를 쓰거나 공식적인 장소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면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해 최대 2년 징역을 받게되는 등 극단적인 민족주의나 보수주의, 차별들에 대해 규제를 하고 있지만 독일에서의 네오나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묘하게 변화시킨 다른 심벌들을 들고 나온다던가 포퓰리즘에 민족주의를 비롯해 차별주의적 요소들을 섞어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어떤 네오나치 그룹이 ‘채식주의 식탁’ 따위의 안티파 문화를 그대로 답습해 비디오로 내놓으며 정치적 메세지를 섞는가 하면, 힙스터 문화가 빠르게 소비된다는 것을 착안에 힙스터 문화와 섞은 뮤직비디오를 내놓기도 했다.

이번 변희재의 징역형을 두고, 말이 많았는데, 사실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일뿐이다. 이러한 상황에 일베가 정당으로 무장해서 들고 나오다면, 어떻게 될까? 2011년 통계를 보면, 노동당 당원수가 24,000명 정도 밖에 안되는데 일베는 회원수가 4만이 넘는다. 진보당 정도는 되지 못하더라도 한국 최초의 극우정당 탄생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더불어 이번 변희재의 징역형(실은 고작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지만)을 함께 생각해본다면, 일베에게 변희재의 징역형은 성전처럼 받아들여지며, NPD의 전 당수 Udo Voigt 처럼 영웅처럼 묘사될 것이다. 이 시점부터는 한국의 우경화는 겉잡을 수 없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일베가 앞뒤 없는 논리를 갖고 있더라도 일단은 파급력을 갖춘 이상, 한국 사회와 한국의 좌파들이 이들을 그저 병신들로 취급하고 자위질할수록, 일베는 그것을 통해 더욱 더 세력을 불려갈 것이다. 이러한 일베를 그저 한낱 병신 취급한다는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무엇이 달랐을까? 내 생각엔 아마도 이번 일베의 집단적인 행동을 저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타인을 차별하는 것이 범죄라는 기본적인 교육만 제대로 되었어도 이러한 상황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지난 7월에 쓴 일베현상을 다시 읽어보자면, 오늘의 일베는 정말 무섭도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들을 그저 무시할 때, 버려진 재앙이 다시 여기로 행진한다. 들리는가? 파시스트들의 군화발 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지는 것이..

방화범의 기도

 

x.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읽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최신글보기’ 이고, 또다른 하나는 ‘인기소식’ 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미고지 사용자 심리조작 실험 소식을 듣고나서 ‘최신글보기’ 로만 읽기를 몇달 해본 결과, 평소 타임라인에 잘 뜨지 않던 내용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페이스북에서 다른 사람의 타임라인을 읽는 시간이 적어졌다. 그만큼 ‘좋아요’ 수도 줄었고,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이 줄었다. 한국과 베를린의 시간차는 7시간이기 때문에 내가 주로 사용하는 시간은 한국의 이른 새벽이거나 아침 혹은 점심시간이다. 더욱이 더이상 핸드폰 쓰기를 거부하고 있는 지금에서는 페이스북에서 대화가 더 줄어들었고, 혼자 생각하거나 글을 읽는 시간이 늘었다. 사실 ‘좋아요’ 수는 사실 내 담벼락에선 별 의미 없다. 그런게 필요했으면 내 담벼락을 전체공개로 했을 것이고, 더욱이 내 글을 공유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의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dx3 페이지를 굴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고 생각하길 바랐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는지는 확실히 알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상당히 제약된 조건에서 해야한다. 제약이 있다고 해서 그만두어야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제약됨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x. 월요일, 카타르시스와의 만남은 아직도 강렬하다. 친구들로부터 좋은 메세지도 받았고, 비를 맞으며 달리는 자전거가 바닥에 나뒹굴며 턱이 찢어졌다. 친구들 여럿이 내 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내 턱을 들춰보고선 “고 하스피탈! 프리스, 스티취-아웃!” 을 외치던 녀석들도 제풀에 지쳤는지 연신 안아주기만 한다. 내가 볼 땐 병원은 확실히 과해보인다. 다시 카타르시스, 그 짧은 만남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분명히 말하기 어려워도 나는 뚜렸히 보였다. 그들의 노래 ‘방화범의 기도문’ 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들이 CrimethInc를 통해서 이야기 하는 만큼 나는 내 위치에서 해나갈 것이다. 언젠가 또 만나겠지. 기약 없는 만남을 기대하는건 고독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만남을 값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 고독함이 필요하다. ‘방화범의 기도문’ 가사가 aus-rotten 쌍따귀 날릴 정도로 긴 옥중서신 같은 것이라 며칠 이따 번역을 완성하겠다. 번역은 개판이지만, 가사는 기대해도 좋다.

x. 월요일 이후, 계속해서 우베 볼의 영화들을 보았다. 이 빌어먹을 세계에 염증을 느끼며, 맞닿아있다는 생각들이 지금 내가 있는 곳 이 밖에도 어디선가 계속 되고 있음은 확신했다. 비록 우베 볼의 표현방식에는 석연찮음이 남으면서도 지금하고 있는 작업에 한층 확신이 더 해졌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할 것은 이것을 통용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폭력’. 그 두 글자를 어떤 것은 ‘필요한’, 어떤 것은 ‘기피해야할 대상’으로 이분법을 다시 읽어볼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이화를 더디게 한다. 어떤 행위가 폭력인지 다시 되짚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다시 화염병을 던져야 할 때. 그 화염병은 우리의 사유와 향유.” 라고 줄곧 이야기 해왔지만, 과연 사유와 향유만이 화염병이어야 하는지 또 다른 화염병들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폭발을 가능케 하는 것은 폭발을 유도할 무엇이나 폭발의 이유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행위는 자유가 아니듯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계급주의 혹은 학벌주의나 집단주의 등의 폐해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유는 자유로울 줄 몰라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는 스스로의 강박과 죄의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더욱 빠르고, 쉽게 문화를 뿌려놓음으로서 그 강박을 가중화 시킨다. 너무도 쉽게 앤디 워홀과 스티브 잡스를 만나고, 너무도 쉽게 50명의 좆같은 빈혈증 스타들을 만나, 너무도 쉽게 성공담을 듣는다. 그리고 그것을 답습하지 않으면 안될 강박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들의 두 손 위에 담겨있는 것은 이 세계의 피와 먼지들뿐인 것이다. 이들은 멍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두 손 위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잘 인지하면서도 그럴수록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강박으로 스스로를 밀어넣는다.

x. “내일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시인들의 열정이 폭탄처럼 폭발하고, 호숫가를 걷고, 몇 주 동안 완전한 친교를 나눈다. 내일은 여름날 저녁에 교외를 통과하는 자전거 경주를 한다. 하지만 오늘은 투쟁” ㅡ 위스턴 휴 오든의 ‘스페인’ 中, 1937년

“To-morrow for the young the poets exploding like bombs, The walks by the lake, the weeks of perfect communion; To-morrow the bicycle races Through the suburbs on summer evenings. But to-day the struggle.” ㅡ ‘Spain’ by Wystan Hugh Auden, 1937

In to the scene, 3 – how?

베를린에 살면서 밴드 하자는 제안이 많았는데, 오랫동안 기타를 안 치기도 했고, 지금은 밴드를 할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사실 기타 넥의 너트가 부러졌는데, 수리비가 50유로나 한다고 해서 엄청 우울해서인게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한동안 미뤄왔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번에 다 이야기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짧게 나눠서 세차례에 걸쳐 쓰겠다. 뭐, 혹 부족한게 있다면 이후에 새로운 글로 보충하겠지.

첫 글은 밴드-diy레이블간 계약, 투어에 대해서
두번째 글은 클럽 대관및 유지, 연습 공간 등
세번째 글은 트레이드, 팬진을 다루고, 부족한 것들을 보충해서 더 쓰겠다.

 

한국의 펑크, 하드코어 밴드들은 일본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의 밴드들과 달리 외국 레이블이나 팬진들과 접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밴드와 레이블 간의 계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어렵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늦게 시작했지만 중국의 펑크, 하드코어 씬은 폭발적으로 성장해 한국보다 크고, 외국 씬의 관심이 높기 때문에 외국의 레이블과 접촉하기는 한국에 비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름은 밝히기 어렵지만, 유럽에서 blackend crust와 d-beat 밴드 등을 했었고, 잘 나가는 nasum과 wolfbrigade 등과도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였던 친구와 트레이드나 유럽 투어 만드는 것, 앨범 계약하는 것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직접적인 숫자들 이야기를 하기까지 했다. 사실 우리는 아니, 혹은 나만 그런지 몰라도 나는 돈계산에 밝지 않고, 돈 이야기 하는게 굉장히 꺼려진다. 물론 그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고, 투어로 유럽을 두루 돌아 본 경험이 있으며, 서로 믿고 의지하는 친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꾸려나가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스탠다드라고 생각하고 모두를 대하면 곤란할 것 같다. 어디까지나 참조하는 정도로만 생각하자. 그리고 이것은 모든 레이블의 방식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diy 형태로 꾸려지는 레이블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대량생산 방식의 자본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으니까.

 

 

케이스 마다 다 다르긴 한데 예를 들면, 보통 diy레이블과 크러스트/그라인드 밴드들은 계약할 때 앨범 수익을 돈으로 환산에서 거래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돈을 부쳐주기 보다는 레이블이 앨범을 찍어 밴드에게 전체의 일부를 주는데, 1000장 lp 찍으면 최소 300장에서 400장 정도는 받아야 괜찮은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다른 조건들이 있다고 하여도 전체 프레스의 최소 20퍼센트 이상은 받아야 한다. 이게 아니라면 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잘 나가는 레이블이라도 이런 규칙을 어기는 일은 흔하지 않다.

물론 조금 다른 경우도 있다. 대형밴드 중에서 ‘Wolfbrigade, 울프브리게이드’ 같은 경우는 유럽에선 자기들이 직접 디스트리뷰션을 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단 한곳만을 통해서 정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물론 이 샵은 자기가 직접 실크스크린해서 판매까지 하는 곳이다.
(한국에 알려져있는 ‘Nasum, 나숨’ 이나 ‘Skitsystem, 쉿시스템’, 울프브리게이드는 굉장히 큰 대형 밴드다. 유럽 씬에서는 이들을 락스타라고 한다. 물론 대형밴드가 되었을지라도 이들은 크러스트/그라인드의 태도를 버린 것이 아니므로 단지 상업적인 락페스티발의 참여는 하지 않는다.)

 

좀 더 싸게 파는 레이블이나 밴드들도 있지만, 물가가 싼 베를린 기준으로 볼 때, 보통 12인치 한장은 공연장에서 10~ 12유로에 팔고, 밴드가 친구들에게는 직접 싸게 팔 때는 7~ 8유로 정도에 판다. 때문에 레이블 입장에서 보면 (레이블이 좀 알려져있다는 가정 하에) 약간의 운영비를 벌어가며, 새 앨범을 찍을 돈을 마련하는 정도. 밴드는 음반 팔아서 가끔 맥주 마실 정도의 약간의 용돈을 버는거지 생활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대신 공연을 하고, 투어를 하면 돈을 좀 벌게 된다. diy펑크, 크러스트/그라인드는 직업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울프브리게이드만 보더라도 멤버 모두 직업이 있다. 드러머는 타투이스트. 물론 종종 밴드만으로 사는 것 같은 친구가 있지만, 그런 친구들도 종종 소일을 하거나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받으면서 산다. 펑크가 왜 국가의 보조금을 받냐고?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자. 이걸 이해 못하고 있다면 펑크에 대해 모든걸 처음부터 설명을 해야하니까.

 

일본 밴드들은 대부분 테입에 배송비 명목으로 각각 2유로 정도 더 붙여서 팔고 있다. 팔리기야 하지만, 테입 하나가 5유로나 하니까, 불만도 아주 없는건 아니다. 물론 테입의 희소성을 감안하더라도 12인치가 10유로인데, 테입 하나가 5유로라면 좀 이상한게 사실. 베를린에서 스쾃이나 하우스 프로젝트의 공연이 2유로에서 5유로 사이, 쾨피에서 열리는 페스티발들에서 십수 개의 공연과 프로그램이 5유로라는걸 감안하면, 불만이 전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밴드들에 대해서 생각해본 것이 유럽과 한국의 물가차가 생각보다 크고, 배송비, 환전수수료 등을 제하면 얼마되지도 않을, 정말로 푼돈을 만지게 되는데 동시에 여기서는 비싸게 사기 때문에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 씬의 밴드들 테입들을 파는 것이 내 눈에는 불필요해보였다. 그리고 그 과정이 굉장히 길고 지루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 밴드들의 테입들을 일단 그냥 뿌리고, 직접 공연을 하러 오는게 더 좋은 일처럼 생각한다. 비행기 삯이 비싸지만, 정말 이 곳 친구들과 뜻이 맞는다면 비행기 삯을 위해 ‘Soli-konzert, 연대공연’ 을 만들어주겠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Ungdomshuset, 웅돔슈셋’ 과 ‘K-town fest’ 와 친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작년부터 녹음실과 테입 전문 디스트리뷰션을 만들었다. 덴마크는 물론이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디스트리뷰션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을 이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한국 밴드들의 테입을 유럽 친구들에게 테입을 뿌려줄 수 있냐고. 이 친구는 오리지널 테입 두개 보내주면, 이윤을 남기지 않는 형태로 테입복사비와 재료비 그리고 아주 약간의 수고비 정도로 넓게 배포해줄 수 있다고 했다. 이 아이디어를 아까 그 스웨덴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했었는데, 확실히 한국 밴드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아무 정보도 없이 막연히 파는 것보다 이런 방식을 통해 뿌리고, 직접 유럽 투어를 도는게 경제적으로나 실제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아이디어다. 하지만, 혹여라도 원하는 한국의 크러스트/그라인드 밴드가 있다면, 이 곳 친구들에게 제안하고 만들어 볼 수 있다. 물론 투어를 하게 되면 내가 프로모션을 하는건 아니고, 이 곳 친구들이 매니징하고 나는 같이 껴서 통역하고, 짐 나르고, 노는 정도랄까.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질문해주시면, 댓글이나 새로운 글에서 더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