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Renzo Novatore
베를린의 ‘Tempest’ 라는 아나키스트 인포샵에서 Renzo Novatore 라는 1890년, 이탈리아 출신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의 사상을 담은 <Toward The Creative Nothing>이라는 책을 가져왔다. 아직 본격적으로 본문을 읽진 않았지만, 렌조 노바토레, 그의 이력은 정말 특이하다. 한국에 아나키스트 서적이 적은 점 등을 고려해 겸사 겸사 한글로 번역할 계획이다. ‘이 달의 아나키스트’ 같은 기획 연재를 하면 재미있겠지만, 혼자 모든 것을 손대기엔 역부족이라 천천히 하나 하나 해나가겠다. 일단 렌조 노바토레의 사상을 담은 이 소책자를 번역하기 이전에 그의 격렬했던 삶을 소개해보겠다.
렌조 노바토레는 배움에 대한 그의 의지와 달리 초등학교 1학년 몇 달만을 다니다 기초 문법만을 조금 뗀 채 가난을 이유로 학업을 그만 두게 되었다. 그는 앎, 지식에 대해 강한 열망을 느끼고 낮에는 농장에서 일을 하며 밤에는 홀로 독학으로 시와 철학자들을 공부하게 되는데 그의 청년기는 Max Stirner, Friedrich Nietzsche, Oscar Wilde, Henrik Ipsen, Charles-Pierre Baudelaire, Arthur Schopenhauer 등을 중심으로 작가, 철학자들의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비판적 사고를 훈련했다.
1908년, 그가 18세가 되던 해, 고심 끝에 그는 스스로 아나키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1910년, 종교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들에 분노하고 그가 사는 지역의 교회를 불태우고, 3달간 징역형에 처해진다. 출소한지 1년 후, 몇 달간 도주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강도및 절도 혐의 였다. (왜 강도와 절도를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기술되어 있지 않다.) 1911년(21세) 9월 30일, 그는 반달리즘의 혐의로 그는 경찰에 체포 된다. 1914년(24세)에는 처음으로 아나키스트 인쇄물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제 1 차 세계 대전 동안 징집 되었으나 전쟁에 거부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1918년 4월 26일에(28세) 그의 연대를 버리고 탈영하였다. 같은 해 10월 31일 탈영및 반역죄로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이 의미는 피의자가 법정에 서지도 않았음에도 재판이 진행 되었고, 재판정 마음대로 형을 선고했다는 의미이다.) 이 때 그는 그의 집을 버리고 도주하여 국가에 대한 무장 봉기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1919년 6월 30일(29세), La Spezia 지방의 무장 봉기가 시작된 후 한 농부가 그를 경찰에 팔아넘겼고, 10년 형을 추가로 선고 받고 형을 시작했으나 Amnesty가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사면 요청함에 따라 몇 달 후에 풀려났다. 그는 다시 아나키스트 운동에 합류했으며, 다양한 반란과 폭동을 노력했다. 1920년, 경찰은 다시 그를 ‘Val di Fornola 해군 기지 내의 무기 보관소에 대한 무장 공격’ 혐의로 체포한다. 몇 달 후, 그는 자유가 되었으나 한 밀고자에 의해 여러 차례 그가 시도했던 반란과 폭동이 실패하고 만다.
1922년 여름(32세), 세 트럭에 가득 찬 파시스트들이 그의 집을 급습 했는데, 그 때 그는 그녀의 부인,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있었다. 파시스트들은 그의 집을 애워싸 공격을 했지만, 그는 수류탄을 사용하여 역공하며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 때부터 그는 다시 지하 저항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22년 9월 29일, 그와 그의 동지 Sante Pollastro는 Teglia의 한 여관에 묵고 있을 때였다. 3명의 Carabinieri(이탈리아 군경)이 여관 안으로 급습하자 그와 그의 동지는 발포가 시작되기 전에 여관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는 곧 담당 경찰관에 의해 죽고 말았고, 그를 죽인 경찰관은 그의 동지 Pollastro에 의해 죽었다. 그에 놀란 다른 경찰은 도망치다 Pollastro에 붙잡혀 목숨을 구걸했고, Pollastro는 그를 쏘지 않고, 빠져나왔다.
Renzo Novatore는 많은 아나키스트 인쇄물들을 남겼는데, 그의 몇몇 글은 정식 허가를 받아 인쇄 발행 되었다.
이 소책자 맨 뒷 장에는 그가 바라본 신, 인간 인류애, 국가, 가족, 사회, 조직, 연대, 우정, 사랑, 남자, 여자 등에 대해 간결하게 정리 해놓은 글이 있는데, 이 글을 보면 노바토레는 회의론자임이 분명해보인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만약 혁명 통해 지금의 사회체제를 부수고자 한다’ 면 그도 “기꺼이 지금의 사회체제를 부수는데 함께할 것”이라 말하며, “그 공산주의자가 혁명 이후에 또다른 사회체제를 건설한다면, 그 사회 또한 부술 것”이라고 피력할 정도로 억압에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대안이라던가 인류애에 회의적이었으며, 조금의 희망도 걸지 않았다.
그는 여자에 대해 ‘가장 잔인하게 부림 당하는 노예-짐승이며, 지구 위에서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가장 큰 피해자’ 라고 표현했다. 모든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렌조 노바토레는 이례적으로 “자신이 여성에게 키스할 때,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지나는지 알고 싶다” 라고 말했다.
크.. 로맨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