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현상

진중권과 표창원 등이 말하는 ‘일베 = 루저-잉여/범죄자-일탈자’ 의 공식은 너무도 손쉽게 그들을 사회적 낙오자나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정신이상자로 규정해버린다. 이러한 규정이 내게 불편한 사실은 과거 전체주의가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사람들의 주장을 상식 밖, 혹은 반사회성으로 규정하며 손쉽게 정신병원에 가두거나 감옥으로 보내 고문하던 것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게는 사회적 낙오는 죄가 아니라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균열이자 건강한 사회의 지표를 상실한 징후라고 읽혀진다.

 

더욱이 사회적 낙오를 죄시하는 듯한 진중권과 표창원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사회적 낙오를 죄시한다면, 예를 들어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 자기 성결정권에 소외받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난민, 정치수감자, 양심적병역거부자, 외국인노동자, 인종차별 받는 사람 등등의 모든 소수자가 기득권이 지향하는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힌 낙오자로 읽혀진다는 것이다.

 

‘일베는 르상티망이 맞다 혹은 아니다’ 문제를 떠나 박권일과 강영민은 이들을 단순히 ‘일베 = 루저-잉여/범죄자-일탈자’ 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지점에서 나는 박권일, 강영민에게 동의한다. (박권일의 글 / 강영민의 ‘짧은’ 글)

 

내게 ‘일베 현상’ 은 체제의 균열(혹은 불화) 이거나 붕괴라는 측면에서 현 체제(지금의 민주주의)가 더이상 평등함을 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종언을 목격하면서 그들에게 마치 ‘유토피아’ 처럼 보였던 자본주의가 실재에서 ‘환영, Illusion’ 에 불과했고, 곧 디스토피아(더이상 꿈 없음; 계급제도)가 다가올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감은 이들에게 ‘세력화’할 동기를 부여하였는데, 자본에 의해 이들에게 제시된 ‘유토피아’ 가 ‘환영, Illusion’ 에 불과했다 것에 대한 분노를 혐오를 통해 표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낙오자라 규정 하는 것이 옳을지라도 낙오자를 죄시하는 것은 “현 체제에는 결함이 없다” 고 말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그런 맥락에서 일베 단계를 거쳐 가시화된 일본의 재특회나 유럽의 네오나치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피해자이고, 소수자이며 좌경화된 정부와 경찰에 맞서 민중을 위해 결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네오나치들은 ‘독립투쟁’ 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는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 Anders Behring Breivik’ 의 총기 난사 사건 이외에도 재특회나 네오나치들이 경찰에게 체포되는 것을 마치 훈장처럼 여기는 것은 물론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죽는 것조차 영광스럽게 여기는 동기를 충분히 부여한다. 동시에 이 매커니즘은 한국 온라인상의 ‘다문화정책반대’ 카페들에서 “브레이빅은 피해자”, “우리도 함께 하자” 라는 주장이 등장하는지 잘 설명해준다.

 

기사링크: 한국 극우 일부 누리꾼들 “그는 피해자…우리도 악랄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