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 MC 구봉서,곽규석 (1972년)

[youtube=://www.youtube.com/watch?v=VD5oP0M2tjw&w=420&h=315]

 

단순 오락프로 같지만, 실제로 사회자들은 가면 갈수록 박정희 전대통령의 치적을 강조하고,
‘외국 옷이 우리 몸에 맞지 않듯이 외국의 민주주의도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 등의 비유를 통해
유신헌법에 투표하길 독려하며, 이 밖에도 유신헌법을 정당성을 강조합니다.
음악이 나오는 부분을 제외하고, 구봉서와 곽규석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멘트를 들어보세요.

기관방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거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A Cyberspace Indepencence Declaration) with korean translate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A Cyberspace Indepencence Declaration)

산업세계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어리의 지겨운 괴물아.
나는 마음의 새고향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네게는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뽑은 정부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가 명하는 대로 네게 말하겠노라.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전지구적인 사회공간은 네가 우리에게 덮어씌우려는 독재와는
무관한 것이다. 너는 우리를 지배할 도덕적 권리도 없고 우리가 무서워
할만한 강제적인 방법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부는 시민의 동의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력을 얻는다.
너희는 우리의 동의를 얻지도 않았고 부름받지도 않았다. 우리가 너희를
언제 초정했느냐? 너희는 우리에 대해서도 우리의 세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는 너의 관할권 바깥에
있다. 사이버스페으스를 마치 공공건설 사업쯤으로 생각하여 너희가
그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는 만들 수 없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자연의 움직임이며 우리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

 

너희는 우리의 위대한 대회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우리 시장의
부를 만들지도 않았다. 너희는 너희의 법률이 얻는 것보다 훨씬
질서정연한 우리의 문화와 불문법에 대해 모른다.

 

너희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니 너희가 개입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희는 우리 구역에 침범하기 위한 구실로
이런 주장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갈등이 있는 곳, 문제가 있는 곳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어 우리의 방법으로 그것을 밝히겠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의 사회 계약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집행은 너희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세계의 조건에 따라 생겨날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너희의 세계와 다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웹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意思疏通)의 물결처럼
계약과 관계 그리고 사유 그 자체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세계는 모든
곳에 있으면서 아무 곳에도 없으며 우리의 육체가 거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이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혼자일
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우리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너희가 생각하는
재산, 표현, 정체성, 운동, 맥락에 의한 법적인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물질에 기반하는 것이며 사이버스페이스에는
아무런 물질이 없다.

 

우리의 정체는 너희와 달리 육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적 강제력으로
질서를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윤리와 개명된 자기이해, 그리고
공공복지에서 우리의 정체가 나타나리라 믿는다. 우리의 정체는 너희의
관할권을 벗어나 널리 퍼질 수 있다. 우리의 선거인 문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법률은 황금률이다. 우리는 이 근거에서 우리의 특수한
해결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가 부과하려는
해결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너희는 미국에서 오늘 통신개혁법안을 만들었다.
그것은 너희의 헌법을 모독하는 것이며 제퍼슨, 위싱턴, 밀, 에디슨,
드 토크빌, 브랜다이스의 꿈을 욕보이는 짓이다. 이들의 꿈은 이제
우리 속에서 새로 태어나야 하다.

 

너희 자녀들이 아주 친근한 그 세계에서 너희는 항상 이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네 아이들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너희가 그들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부모의 책임이라는 미명하래 관료제를 신임하지만
너희는 너무 어리석어 너희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세상에서는 미천한 것에서 천성의 것에 이르기까지 휴머니티(humanity)
의 모든 감정과 표현이 연속적인 전체의 부분이며 비트의 전지구적인
대회이다. 우리는 우리의 날개가 움직이는 공기와 우리를 질식시키는
공기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중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싱가포르, 이탈리와 미국에서 너희는
사이버스페이스의 프론티어에 검문소를 세워 자유의 바이러스를
격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분간 전염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비트를 지닌 미디어로 뒤덮힐 세상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될 것이다.

 

너희의 진부한 정보산업은 미국이나 다른 곳에서 전세계적으로
연설권을 확보하려는 법률을 제안함으로써 존속될 수 있다.
이들 법률은 아이디어를 쇳덩어리와 똑같이 취급하여 이것이 또하나의
산업생산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복제되고 아무런 비용없이 무한히 배분될 수
있다. 이러한 사고가 전지구적으로 퍼지는 것은 너희의 공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날로 늘어가는 적대적이고 식민지적인 조치들은 자유를 사랑하고
스스로 결단했던 자율적인 우리의 선조처럼 우리에게 먼 곳에서
온 제복의 권위를 거부하도록 만든다. 비록 우리의 육체는 너희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만 이제 너희의 지배에 견딜 수 있는 우리의
가상 주체를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구 전체로
퍼뜨려 아무도 우리의 생각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 정부가 이전에 만든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다.

 

스위스, 다보스
1996년 2월 8일
John Perry Barlow가

 

 

 

* 필자 주 : ‘존 페리 바를로’는 누구인가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의 설립자인 존 페리 바를로는 1996년 2월6일 클린턴이 통신법 수정안에 서명하는 날 이 보스턴항(인터넷)에 차(통신품위법)를 폐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결단했다. 바를로가 독립선언문을 올리자 인기있는 전세게 수 백개의 사이트에서 이 독립선언문을 복사해 재빨리 게재했다. 천지사방에 뿌리지는 종이전단처럼 인터넷 곳곳에 디지털 전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록그룹 ‘그레이트풀 데드’의 작사자였고 히피이자 카우보이였던 바를로는 1990년에 미쉘 케이포와 함께 전자 프론티어 재단을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사이버스페이스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독립운동가이다.  그가 사이버스페이스에 그처럼 큰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인간공동체에 대한 1960년대의 낭만과 열정이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무소유의 유토피아를 갈망하던 1960년대의 히피는 재산과 인종, 계급을 가리지 않는 인터넷 공동체와 유사하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그레이트풀 데드’의 리더인 가르시아가 1967년에 밝힌 다음과 같은 세상과 통한다.
“우리가 그리는 세상은 평화가 넘치는 지구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권력을 꿈꾸지 않아요. 투쟁같은 것은 머리 속에 없어요. 전쟁이나 혁명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도 다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단순한 삶이 좋은 삶입니다. 전인류가 몇발짝 더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ㅡ 어디서 스크랩된지 기억이 없습니다.
번역하신 분이 저작권에 대해서는 비영리 목적이니 관대하게 생각하시리라 믿고 일단 올립니다.

정어리 – 20

 

그대가 없으면 술잔이나 홀짝거리며,
다가올 졸음들과 피곤함들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도 못가 콧등이 시큰거릴 것을 알고 있다.
절절매며 어두컴컴한 저편 바라보고 홀짝거릴 거란 것도..

 

ㅡ 2009년 11월 24일, 이른 저녁

정어리 – 19

 

부디 걱정마,
혁명은 너 때문에 안 일어날거야.

Please, don’t worry.
The revolution will not happen because of you.

ㅡ 2008년 10월 10일, 이른 새벽

정어리 – 18

 

사랑도 화재처럼 순식간에 타오르고,
불운도 화재처럼 느닷없이 덥쳐오겠지.

 

내 인생도 화재처럼 갑작스럽게 불타 재만 남겠지.

 

 

ㅡ 2010년 2월 21일

정어리 – 17

 

 

“쏟아져, 비”

“우르르 쾅쾅 하며 비가 쏟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무언갈 집어 삼킬듯 비가 쏟아지면 네온사인이 현란하고 시끌벅적한 거리는 잠시 입을 다물어, 나는 주머니에 달랑 200원이 든 바지를 벗어 두고 창 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울 텐데.. 나는 3주 전 사다둔 담배를 이 좁은 방구석에서 나의 유일한 도피수단으로 두었는데, 아직 반갑도 채 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한 비가 쏟아지면 냅다 달려나가 비를 맞으며 웃을 지도 모르겠다.
네댓시간 전 30초도 채 되지 않는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어렵다. 하지만, 열심히 해라.”는 말 한마디만이 기억에 남는다. 몇마디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싱거웠던 그 대화에서 그 말 한마디만이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어저께 새봄이가 보여준 전혜린의 글 중에서 “가난하지만 자랑스러워야 한다. 긍지를 지녀야 한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부디 이 말이 내게 도피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꼭 비가 쏟아졌으면 좋겠다.
어둡고 좁다란 복도는 정적이 늘 나를 대신해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다가올 비바람 속에서도 완곡한 표현법을 구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비가 쏟아지길 희망한다.

– 2010년 12월 10일. 늦은 밤, 나의 외침

정어리 – 16

쏟아질 것 같은 밤이다.
온 몸이 먹다만 식은 죽처럼
쏟아질 것 같은 밤이다.
어딘가 부서지면 방구석에 쳐박혀 술이라도 진탕 마신채
누구라도 별 다른 이유 없이 원망할 텐데
이 쏟아질 것 같은 밤은
그런 나를 더욱 궁색하게 만든다.
누군가 나를 움켜쥐면 좋겠는데…
누군가 나를 오해해주면 좋겠는데…
나는 이미 쏟아져있었다.

 

ㅡ 2010년 12월 26일, 늦은 밤

정어리 – 15

 

“엉겅퀴”

 

나는 너의 긍정이고 싶다. 네가 어두워질 때 긍정으로 이끌어주고 싶다. 밝은 인간이 되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나의 끊임없이 부정적인 세계관을 토해낸다.
과연 네게 긍정으로서 남을 수 있을까?
네가 지칠 때 생각만해도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자꾸만 어두워진다.
담배 하나 입에 물자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어느 주머니에서도 담배는 나오지 않고,
입김만 주위를 서성거렸다.

 

자꾸만..
자꾸만 어두워진다.

 

주머니를 뒤집었더니 새로 나온 디자인의 10원짜리 동전과
오래된 10원짜리 동전이 뒤섞여 나왔고,
몇일 전에 그 녀석과 마시다 메모해둔 쪽지가 마구 구겨지고 찢겨진 채 나왔다.
꽤나 취하도록 마셔서인지 뭐라고 적어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글자까지 잘 보이지 않으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다.

 

‘xxx 반드시 다시 볼 것.’

 

대체 내가 무엇을 다시 봐야한다고 남긴 것일까.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면 조금 덜 했을텐데 앞에 글자가 보이지 않으니
괜히 속이 쓰렸다. 또 쓸데없는 걸 주절거렸겠지라고 생각하고 밀쳐두고 싶은데
내가 내게 전달하려던 그 메세지가 뭐였는지. 다시 속이 쓰렸다.

 

메모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보니 어느새.

 

어느새 손톱이 뒤틀린 틈 사이로 피가 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가 손톱 뜯는 버릇을 고치도록 애를 썼다.
그런 엄마의 노력에 부응하지 못하고 나는 스무살이 넘어서도 손톱 뜯는 버릇을 갖고 있다.
지금 메모된 쪽지를 보며 기억을 더듬는 순간에도 말이다.

 

나는 다시 어두워진다.
너의 긍정으로 남고 싶다.
자꾸만 어두워진다.

 

침대 위에 누워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다보면 침대 밑으로 빨려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다.

 

자꾸만 어두워진다. 자꾸만 어두워.

 

ㅡ 2011년 1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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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 – 14

“얼라들도 잘 잉는교?”

 

벌써부터 많은 방들이 모두 텅텅 비었다.

 

몇일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어제 밤부터 수차례 속을 개워냈다.
엄마와 어찌 어찌 통화를 하는 내내 엄마는 아직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했고,
손님이 없어 라디오 들으며 누워 있다 하였는데도 나는 염치 없이 속이 아프다 말했다.

 

병원 가봐야 의사 진단이 뻔해 약국을 들러 나 혼자 처방하고 이래저래 몇가지들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아픈 것도 아닌데 괜히 서러운 티좀 내려했는지 손을 부들 부들 떨며 열쇠를 들었다.
약 봉투 속, 병 부대끼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 한숨 몇차례 쉬니 밖에서 또다른 병 부대끼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 “얼라들도 잘 있는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때문에 병 부대끼는 소리는 술병들인 것이 분명해졌다.
내 추론을 기다렸다는 듯이 “요즘 바빠서예”라는 소리가 들렸다.

 

입구 쪽 코너방 그 사람은 몇일 전부터 술타령이다.
몇일 전엔 그 사람이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것을 보았다.
고시원 규칙을 어기고 담배 피우는 것이 짜증나 있었는데, 조금은 이해해주기로 했다.
서럽고, 더러운 상황에 빠져있을 그 사람을 탓하고 싶지 않다.

 

복도가 고요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오른쪽 방 사람도 없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왼쪽 방 사람도 없다.
나는 여기 방을 지키고 책 좀 보고 누워서 음악, 영화 따위를 즐기고 자료를 찾고 있다.

 

서럽고, 더러워서 죽을 것 같다고 홀로 응석을 부릴 때,
혼자 술 마시지 말고 하나씩 아껴 아껴 피워야지 하고 사다둔 담배 한갑을.
세달만에. 오늘 새벽에 다 피웠다.
그게 내게 긍정적인 효과였는지 혹은 실패한 방법이었는지 지금 되짚지 않겠다.

 

고요한 복도. 서럽고 더럽더라도 아직은 힘들어하지 마라.
얼라들도 잘 있단다. 얼라들도.

 

 

ㅡ 2011년 2월 1일, 저녁

정어리 – 13

 

2008년 초여름 종로 길 어귀에 몰린채 전경들에게 두들겨 맞던 때가 생각나 오늘은 잠에 쉽사리 들기 어려운 밤이다.

 

몸뚱이 하나 가눌 곳 없어서 허약하고, 비겁하게 패배의식에 절망감을 안고 너를 바라본다. 나는 네 절망의 보균자. 정처없이 떠돌고 있지. 화려한 네온사인의 옥외 간판 뒷면에서 웅크려 앉아 끊임없이 술잔을 핥는 이상주의자. 쓸모없는 자괴감의 생산자. 어두워 보이지 않는 비탄의 바다 위에 우두커니 선 네 조력자.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날 미워하고 무서워하지. 걱정하지마, 나는 안 무서운거야. 널 해치지 않을거야. 아파하지마.

 

ㅡ 2009년 3월 31일, 늦은 밤